부산대학교 건축학부 도시건축연구실 / Lab for Urban Architecture, Pusan National University
부산대학교 건축학부 도시건축연구실(지도교수 : 우신구) 한국과 아시아의 도시건축 이론 및 설계를 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 연구실에서 수행했던 연구프로젝트들입니다.


김해시 도시경관기본계획, 2003-2004 (김해시청)
베트남 하노이의 도시건축 연구 2004-2007 (한국학술진흥재단 지원)
부산 광복로 시범가로 국제공모지침 작성 2005 (부산시 중구청)
창원시 도시경관기본계획, 2005-2006 (창원시청)
부산비엔날레 2006 전시디자인 (부산비엔날레 조직위원회)
창원시 주택정책 기본계획, 2006-2007 (창원시청)
광복로시범가로조성사업 컨설팅 2005-현재(문화관광부, 부산광역시, 부산시 중구청)
충남 예산군 수덕사 집단시설지구 아름다운 거리 조성기본계획 (충청남도)
광복로시범가로조성사업 백서제작(부산시 중구청)
양산 북정동 어린이놀이터 리모델링 프로젝트 (한국토지공사, 희망제작소, 양산시청)
북항재개발 원도심연계방안 및 부산항종합기본구상, 2007-2008

 

현재 우리 연구실에서 수행하고 있는 연구프로젝트들입니다.


1. Slow Street를 적용한 도심상업거리 재활성화 방안 (학술진흥재단)
2. 시범가로 평가규범으로서의 Pattern Language 연구 (학술진흥재단)
3. 부산 도시 기록화 사업 (부산시, 부산국제건축문화제)
4. 괴정 뉴타운 총괄계획 (부산시, 사하구)
5. 청사포 경관협정 컨설팅 (부산시, 해운대구, 중2동, 청사포발전협의회)


우리 연구실은 다음과 같은 그룹들과 협력하고 있습니다.


(사)희망제작소 간판문화연구소
(사)커뮤니티 디자인 연구소
도시건축디자인연대
프로젝트 U 그룹
(사)부산국제건축문화제
부산광역시청
사하구청




Lab for Urban Architecure, School of Architecture, Pusan National University (Prof. Woo Shin-Koo) is a research center on design/theory of urban architectures in Korean and Asian cities.


The projects we have done recently.

  • Research on Urban Architectures in Hanoi, Vietnam from 2004 until 2007 (sponsored by Korea Reasearch Foundation)
  • The Revitalization of Gwangbok Street, Busan, from 2005 until 2007 (sponsored by Ministry of Culture and Tourism, Busan Metropolitan City, Jung-gu District Office)
  • The Masterplan for cityscape of Changwon City. from 2005 until 2006 (sponsored by Changwon City)
  • The Exhibition Design of Busan Biennale 2006.
  • Remodelling Project for Children's Playground in Bukjeong Dong, Yangsan City(Korea Land Corporation, The Hope Institute, Yangsan City) 
  • Masterplan for Busan Port and Linking Strategies between City Center & North Port Redelopment
  • White Paper for Gwangbok Street Revitalization Project (Jung-Gu District Office, Busan)

The projects we are doing at the moment are as follows,

     1.  Research on "Slow Street" for Revitalization of Urban Commercial Street (Korea Research Foundation)
     2.  Research on Pattern Language as Estimation Criteria for Model Street Projects (Korea Research Foundation)
     3. Photographing Busan City (Busan Metropolitan City, BIACF Organizing Comittee)
     4. Regeneration Plan for Goejeong New Town, Saha-Gu, Busan (Busan Metropolitan City, Saha District Office)
     5. Consulting for Landscape Agreement of Cheongsapo Village (Busan Metropolitan City, Haeundae District Office, Cheongsapo Village)

 


We have project partners like,

  • architectural studios
  • construction companies
  • research institutes
  • labs of other universities
  • NGO groups
  • and many local authorities.

 

If you have any inquiries, please contact to woosk@pusan.ac.kr.

 

 

 

 

 

 

 

 

by UrbanArch | 2010/04/19 22:49 | The Lab. | 트랙백
펌) 우리동네 골목형 빵집이 왜 자꾸 사라질까?
우리동네 골목형 빵집이 왜 자꾸 사라질까? 헤럴드경제 | 2009.07.15 07:53

출처 : http://stock.daum.net/news/news_content.daum?type=photo&sub_type=&docid=MD20090715075307023&section=&image=Y&limit=24&page=1&t__nil_economy=img&nil_id=1


생계형 동네 빵집이 사라지고 있다. '모짜르트' '몽마르트' '케익나라' 등 개성 넘치던 빵집 이름이 동네 골목을 하나 둘씩 떠나고 그 자리에 '파리바게트' '뚜레쥬르' '크라운베이커리' 등 똑같은 이름표를 단 대기업형 프랜차이즈 제과점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1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파리바게트, 뚜레쥬르, 크라운베이커리, 신라명과 등 4대 제과점 프랜차이즈 수는 4500여개에 달한다. 이는 전체 제과점의 35% 안팎에 해당한다. 2007년 3479개(점유율 30%) 비율에 비해 크게 상승한 수준이다.

기업체 명퇴붐이 불었던 지난해부터는 제과점을 창업하려는 명퇴자가 몰리면서 프랜차이즈 제과점의 인기가 급상승했다. 반면 태극당, 고려당, 뉴욕제과 등 90년대를 주름잡던 중소기업형 제과점은 내리막길이다.

중소기업형 제과점은 90년대 중반까지 업체별로 수백개의 체인점을 거느리며 치열한 영토 확장 경쟁을 펼쳤지만 90년대 후반 대기업형 제과점이 등장하면서 줄줄이 문을 닫는 등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생계형 빵집은 상황이 더욱 심각했다. 도심은 물론 지방 대도시의 경우도 생계형 빵집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서울 대방동에서 '빵궁전'을 운영하고 있는 김병철 사장은 "최근 4년 사이에 주변에 있던 생계형 제과점이 6곳이나 문을 닫았다"면서 "우리도 오랫동안 할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경쟁 상대가 줄었으면 그만큼 매출이 올라야 하는데 매출은 2005년에 비해 거의 반토막"이라며 "마케팅과 자금력을 갖춘 대기업 쪽으로 손님이 발길을 돌린 탓"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생계형 빵집은 막강한 브랜드 파워를 앞세운 대기업의 마케팅 전략과 다양한 신제품에 맞서기엔 역부족인 게 사실이다. 기업형 제과점 간 출혈경쟁도 생계형 빵집엔 치명타다. 여기에 해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점포 임대료와 재료비도 생계형 제과점의 경쟁력을 위협하는 대목이다. 전국에 걸쳐 생계형 빵집이 줄줄이 문을 닫거나 업종을 전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길동 '모차르트제과점' 정근석(가명ㆍ36) 사장은 "1000원짜리 빵을 팔면 350원이 재료비"라면서 "빵을 팔아도 임대료와 인건비 등을 빼면 남는 게 없다"고 푸념을 쏟아냈다.

기업형 제과점에 맞서기 위해 매장을 개편하는 등 공격적인 생계형 점포도 있다. 이들이 꺼내든 생존해법은 윈도형 제과점이다. 소규모 매장에 적용되는 윈도형 제과점은 간단한 조리시설과 함께 빵을 전시하는 진열장을 소비자의 시선이 잘 띄는 도로 쪽에 배치하는 것이다.

최근 윈도형 제과점을 차린 김형기 씨는 "예전의 큰 제과점에 비해 매장은 작지만 임대료가 월평균 100만원으로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면서 "임대료는 적은 반면 빵은 많이 팔려 수익성 개선효과가 뚜렷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고객이 싼맛에 제과점을 찾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인근에 위치한 기업형 프랜차이즈 빵집에 비해선 매출이 턱없이 적은 게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황혜진 기자(hhj6386@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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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rbanArch | 2009/07/16 09:12 | Press | 트랙백
<펌> 도쿄 도시계획의 두 흐름
원문출처 : http://ubin.krihs.re.kr/
민범식 l 국토개발연구원 책임연구원

 

도쿄도의 도시정책을 이야기하려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1967년에서 1979년까지 12년에 걸쳐 집권한 혁신계의 미노베 도지사와 그리고 그 이후부터 최근까지 집권했던 자민당계의 스즈키 도지사이다. 이 두 도지사의 도시정책 구상과 추진방향은 자민계와 혁신계의 차이만큼 서로 다른 방향인 것이 인상에 남는다.
1.국토개발과 시빌 미니멈의 도시정책
일본의 국토개발은, 1955년 보수계의 통합으로 탄생한 자민당에 의해 중앙정부 지배를 확고히 하고 1960년 미일안보조약이 비준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이케다정권은 소득배증(倍增)계획―실제로는 GNP 배증계획이었지만―을 내세워 산업기반을 위한 사회자본을 충실하게 마련하는 정책을 주목적으로 하는 경제 개발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것과 보조를 맞추어, 1962년에는 전국종합개발계획(이른바 1全總)을 수립하여, 도로, 항만, 콤비나트의 건설 등의 산업기반시설정비를 성공적으로 이룩하게 되었다. 이 1전총은 1969년의 신(新)전국종합개발계획(이른바 2全總)으로 이어졌고, 더불어 같은 내용을 담은 자민당 다나카 수상의 「일본열도개조론」이라는 책이 사회유행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같은 시기에 고도성장의 한편에서는 구조개혁론으로 선회한 혁신계연합이 대도시 지방자치체를 중심으로 선거에서 승리하게 되었다. 신계지자체들은 지자체연합을 구성하여 국토개발 일변도의 보수 자민당의 중앙정부 정책에 대항하여 독자적인 도시정책을 모색하게 된다. 즉 보수 자민당정부의 산업기반조성이라는 열기 속에서 부작용으로 나타난 환경오염과 공해병의 심각화, 저임금과 열악한 주거환경에 대항하여, 혁신 자치체는 반공해, 생활기반조성을 통한 시빌 미니멈 달성을 도시정책의 목표로 내세웠다. ‘시빌 미니멈’이란 시민의 기초생활환경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기준이라는 추상적 개념으로,(1) 이를 1969년도 도쿄도 중기계획에서 계획기준 설정의 이론적 틀로 사용하여 일약 관심을 끌게 되었다. 이것이 다른 지자체에도 영향을 미쳐 1970년에는 전국 혁신시장회가 이를 혁신도시가꾸기 강령으로 채택하기에 이르기도 하였다. 기초생활환경의 기준은 국가차원에서 마련된 것이 아니어서 구체적 기준은 도시형편에 따라 달리 작성되었다. 이때부터 도시정책이 중앙정부의 지시를 이행하는 형식이었던 이전과 달리 자주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구 분특별구(23구)전 체
면 적621.0㎢1,404.8㎢
인 구7,853,504명11,497,716명
세 입2,750,688백만엔7,044,301백만엔
세 출2,663,893백만엔7,008,000백만엔
상수도보급률96.50%-
하수도보급률99.50%-
도시공원개 소1,1471,926
면 적2,840ha4,989.68ha
화재발생건수4,895건6,739건/년
교통사고건 수-58,412건/년
사망자429명-
초등학교개 소922, 사립 321,372, 사립 50
학 생392,729명609,792명
차량보유대수승용차1,771,477대2,845,018대
전 체2,384,672대3,675,639대
  전국시장회편(1996), 일본도시연감
※ 특별구면적은 서울시면적 605.4㎢와 유사함. 세입세출은 각각 특별구, 도쿄도의 것임.
도쿄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17세기에 에도지방에 바쿠후를 차리면서 정치중심지로 성장하여, 메이지 유신 이후에 도쿄(교토의 西京에 대응한 東京)로 되면서 수도가 되었다. 에도의 인구는 적을 때에도 50만 명을 넘었고 한창 때는 100만 명 정도로 당시 세계 최대의 도시였다고 한다. 면적은 약 7,800ha 정도로 3분의 2는 다이묘의 집터나 무사들의 집터였고 일반 서민은 나머지 3분의 1에서 북적대고 살았는데, 화재와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도쿄는 메이지 이후 근대적 도시로서 개조되기 사직하였다. 서양도시에 뒤떨어지지 않도록 외국인 기사를 고용해 철도를 놓고, 긴자 일대를 폭 18m 도로와 3층 정도의 벽돌주택으로 바꾸어지었다. 몰수당한 다이묘와 무사들의 집터 중 중심부인 가스미카세키는 관청가로, 마루노우치 일대는 미쓰비시 등이 매입해 재벌동네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관동대지진 후에는 오스만의 파리개조계획과 우사한 도쿄개조계획이 작성되었으나 재원부족과 빠른 복구를 바라는 여론 때문에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미군 공습으로 11만 명 이상이 죽었고 전체 가옥의 반 이상이 소실되어 폐허가 되다시피 했으나, 한국전쟁기에는 폐허 속에서 고도성장하여 인구와 산업이 집중되면서 1962년경에는 1,000만을 넘는 대도시가 되었다.
2. 미노베 도지사의 광장과 푸른 하늘의 도쿄구상, 1971
오사카와 나고야, 교토는 1963년부터 일찍이 혁신계 지자체가 구성되었지만, 도쿄는 1967년에 혁신계 연합공천으로 나선 전 도쿄대학 경제학부의 교수 미노베가, 생활중시의 정책을 내세우며 도지사로 당선되면서 출발하였다. 그는 도쿄도 중기계획을 작성하면서 어떻게 하면 시빌 미니멈에 도달할 수 있을지 목표를 설정하여 발표하였다.

<표1> 에서 보듯이 시빌 미니멈의 내용은, 현재 보편적인 도시정책 항목으로 채택되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러한 시설들이 충분치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우선적으로 추진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지금 우리의 도시계획내용과 견주어 보아도 보육소, 장애인시설, 노인홈 등 복지부분에 상당히 중점을 두고 있다는 차이점을 엿볼 수 있다. 앞의 예는 물적 시설과 관련된 것이나, 이것 이외에도 소프트한 부문에도 여러 가지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였다. 예를들면, 소규모 사설보육소에 보조금지급 결정, (2) 노인생활수당 신설과 무료의료시책 추진, (3) 공해방지조례의 제정, (4) 보행자위주의 도시로 정비하기 위하여 폭 4m이상의 도로에 보행통로를 확보, 보행자위주의 신호체계 및 지상횡단보도 원칙 설정, (5) 대중교통이용 활성화를 위한 지하철 1, 4, 9호선의 건설 추진, 도 공무원의 봉급을 중앙공무원 수준으로 인상 등 복지주의 및 인본주의적 내용이 담긴 것들을 차례로 추진하였다.

1970년, 다음 도지사 선거가 임박하자 자민당은 무르익은 반자민당의 분위기를 돌파하기 위하여 「도쿄긴급개발행동 5개년계획(이른바 4조엔 비전)」(6) 을 내놓게 된다. 주요 내용은 도쿄 구부(區部)의 서쪽에 새로운 환상도로를 건설함과 더불어 이 일대에 주택과 업무기능을 담아 도쿄의 주택 및 교통난에 대응한다는 기능적 도시개발계획을 담고 있는 것이었다.

미노베 도지사는 이에 대응하여 제2기 선거전략으로 3년 간격으로 수립하는 도(都) 중기계획의 5차분을 모은 15년간의 시빌 미니멈 달성계획을 주 내용으로 하는 「광장과 푸른 하늘의 도쿄구상」을 내놓았다. 아울러 이 계획구상은 동경도 전체를 2극분산 구조로 개편하는 계획과 문제주거지를 유형별로 나누어서 정비방향을 제시하고, 공해방위계획 등의 내용을 포함하는 등 포괄적인 구상이다. (7)

3. 미노베 도지사의 좌절과 성과
미노베 도지사는 높은 인기로 무난히 재선되어 도민의 신임 속에 정책을 계속 끌고 나갔다. 그러던 중 1973년에 일어난 오일쇼크는 일본경제에 불황을 몰고 오면서 지자체에 심각한 재정적자를 안겨다 주게 되는데, 도쿄도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노베 도지사가 그 동안 추진해 온 넉넉한 복지정책도 고도경제성장에 의한 세수증가와 교부금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에 재정이 감소하자 그대로 끌고 나갈 수 없었다. 복지정책이 그대로인 채 재정수입이 감소하자 당연히 재정적자로 이어졌다.

계속 쌓여 가는 재정적자에 대한 돌파 방법을 고심하던 미노베 도지사는 중앙정부를 상대로 지방세제개혁, 초과부담 해소, 기채자주권 확보, 과세자주권의 확보 등을 내용으로 하는 이른바 재정투쟁이라는 방법을 택하고 법정소송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대도시 지자체의 기체기준액은 표준재정 규모의 겨우 5%로 제한되어 있었다. 이에 중앙정부를 상대로 기체제한 철폐를 위한 소송준비를 하게 되었는데, 도의회 내의 신자유 클럽이 반대하여 도중에 좌절되었다. 세수증대를 위해서 도 세수의 반을 차지했던 법인세를 중앙정부가 지시한 표준세율보다 높이려고 하였다. 이 투쟁도 자치성 견제로 법인주민세와 법인사업세 중 후자에 한해 1974년부터 겨우 실시하게 되었다. 중앙정부등의 견제로 충분한 재정획득에 실패하면서, 도청의 재무담당공무원이 중앙정부의 눈치를 보면서 타협이라는 방향으로 돌아서게 되자, 그는 결국 도청직원 승급보류와 의료보험비 조정 내용을 담은 재정재건계획서를 내면서 무릎을 꿇 게 된다.


미노베 도지사의 실험은 오일쇼크에 의해 시련을 겪었으나 환경보전, 복지확립 면에서 자주적으로 정책을 시행한 결과 오히려 중앙정부의 법 제정 등을 이끌어 냈고, 지자체의 자치권 확립에서 성과가 있었다고 일반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촉발한 시빌미니멈 이념은 도시정비정책의 제도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면, 시빌 미니멈 이념은 최소주거기준을 국가차원에서 마련하고 지원하고자 하는 움직임에 영향을 주었다. 이는 주거법 제정에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정부의 정책인 주택건설 5개년 계획 속에 정책기준으로 설정되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각 자치구가 동네별로 기초생활환경에 대한 진단을 실시하고 정비를 시작한 것도 이때인데, 중앙정부에서 예산사업을 신설하여 지원하는 주거환경정비사업 등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반면에 높은 인건비, 지나친 복지정책을 효율적으로 조정하려 하지 않고 오로지 중앙정부의 상대로 한 재정투쟁으로 해결하려 하였다(미주형 경영론)는 점이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즉, 자민당계로부터는 단순명쾌하게 군살을 빼라고 비판당하였고(감량형 경영론), 다른 논점인 정책형 경영론 쪽에서는 재정투쟁에서 목적으로 한 보수 중앙과 혁신 지자체의 대결에 의한 자주권 확보도 좋으나 한정된 재원에서 효율화 노력을 게을리하였다고 지적당하였다.

4.스즈키 도지사의 재정재건과 마이타운 도쿄, 1981
중앙정부의 견제, 내부 관료의 이탈, 경기불황과 지속된 재정적자리는 사면초가에 빠진 미노베 도지사는, 1979년 도지사 선거전에서 4선을 시도했으나 재정재건과 마이타운 도쿄의 실현을 공약한 자민당의 스즈키 후보에 자리를 내놓게 되었다.

도쿄 도지사로 당선된 스즈키는 1981부터 도의 행재정 3개년계획(중기계획)의 명칭을 선거전의 캐치프레이즈였던 「마이타운 도쿄 - 도쿄도 종합실시계획」으로 변경하고, 별도로 10년 장기계획인 도쿄도 장기계획(제1차, 1981~1990)을 신설하였다. 마이타운의 목표는 도쿄를 도민 누구라고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동네, 신바람나게 살 수 있는 마을, 고향이라고 부를 수 있는 동네로 만드는 것이었다. 구체적 내용으로는, 21세기를 향하여 도쿄를 살기 좋은 도시로 재생하기 위해서는 일자리와 거주가 균형잡힌 다핵심으로 전환되고, 정보화·국제화가 진행되어 도쿄 일극집중현상이 현저함에 따라 집중의 폐해를 시정하고 균형잡힌 도시로 마드는 것을 긴급과제로 한 것이었다.

그는 취임하자 선거전 당시 내세운 마이타운 도쿄에서 설명한 추상적 목표는 뒤로하고, 곧바로 도의 재정재건에 돌입하여 감량경영을 시작한다. 그가 취한 감량경영은 직원정수의 삭감 등 내부노력, 사무사업의 조정과 수익자부담, 도와 구의 역할분담, 세·재정제도의 개선을 기본방침으로 하였다. 구체적으로 유례가 없었던 10%가량의 도직원 감원과 급여 및 수당의 동결, 복지부문에서는 노인의료 및 복지수당의 하향조정, 공공요금의 현실화(인상), 그리고 보육원, 생활실습소 등의 업무를 구에 넘기는 방법으로 예산부담과 인원을 줄여 나갔다. 자신의 봉급도 반액으로 삭감한 그는 이렇게 하여 빠르게 재정적자를 극복해 나갔다. 물론 재정적자 극복에는 운 좋게도 예상 외로 일본의 경기가 빨리 회복되어 세수가 증대된 점이 도움이 됐고, 미노베 전 도지사때에 있었던 재정투쟁의 유산인 법인 사업세의 초과과세 덕도 있었다.
5. 스즈키 도지사의 성공과 비난
스즈키 도지사의 감량 노력과 행운으로 도쿄도 1981년의 흑자결산에 이어 1982년부터는 매년 흑자예산 편성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그는 혹자예산을 가지고 그 동안 줄인 복지 서비스를 충실히 하거나 생활기반비에 투자하지 않고 여러 가지 기금으로 만들었다. (8) 그리고 이렇게 마련한 기금을 바탕으로 방만한 기념비적 개발투자를 하기 시작하였다. 도청사 신축,(9) 도쿄 무도관, 도쿄 국제포럼,(10) 에도도쿄박물관, 예술극장, 사진 미술관, 에비스 재개발, 지하철 12호선 건설등과 임해부도심 조성을 차례로 추진해 나갔다.

특히 임해부도심에 도쿄 텔리포트 타운을 건설한 것은 민간활력 도입에 의해 도시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려는 나가소네 수상의 권유에 의한 것이었다. 나카소네 수상은 JAPIC(11) 으로부터 이 아이디어를 얻었다. JAPIC은, 재정적자에 의해 대규모 공공투자가 불가능한 상태에서는 규제완화 및 민간자본의 참여에 의한 도시개발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하였던 것이다. 내수확대를 요구하는 미국의 압력에 고심하던 나가소네 수상은 이것이 돌파구라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도쿄 텔리포트 타운도 그 가운데 하나다. 마침 정보화, 국제화의 진전으로 국제금융·경제 중추관리기능을 도입하여 세계도시 도쿄를 추진하기 위한 방법으로 도쿄 텔리포트 타운은 안성마춤이었다. 그러나 한편, 텔리포트 타운 건설은 마이타운 도쿄구상에서 내세운 집중분산정책과는 다른방향이기도 하였다. 단일사업으로 가장 큰 대규모사업이었던 텔리포트 타운은 도쿄만 13호매립지 약 448ha에 취업인구 10만명, 거주인구 6만 3,000명을 수용하는 내용으로 1988년에 계획이 확정되었다. 사업을 위해 제3섹터회사를 설립하고 이 회사가 토지임대에 의한 수입으로 투자비를 회수하는 방식으로 추진되었다.

그러던 중 스즈키 도지사도 일본의 경제 상황에 의해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즉 거품기에 계획을 예정보다 앞당겨 실시하였다가, 이윽고 1991년경 걷히기 시작하자 입주예정 회사들이 속속 계약을 취소하거나 토지임대료의 인하를 요구하게 되었고 투자비회수가 어렵게 된 것이다. 투자회수가 안 되면서 기금만으로 계속적 사업추진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라나 도 재정에 의한 추가지원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으로 되어 사업이 진퇴양난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 시민단체 등의 비난여론에 몰려 은퇴 의사를 표명하게 되었다. (12)

마이타운 도쿄의 주요골자는 6개의 부도심 육성과 임해부도심의 건설이었는데, 그가 심혈을 기울였던 이 다핵분산 구상은 신주쿠도청사 신축과 그 이전지인 도쿄역 근처의 도쿄국제포럼의 신축, 그리고 임해부도심 텔리포트 타운의 건설추진 정도가 두드러진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텔리포트 타운 건설도 광역차원의 지자체간 협의 없이 추진하여, 앞서 건설한 인접 지바의 마쿠하리 멧세와 요코하마의 미나토미라이 21의 국제전시, 회의기능과 겹쳐 국가 차원에서 볼 때는 과잉투자가 되어 다 함께 운영적자를 유발하고 말았다.

스즈키 도지사에 대해 나돌았던 비판을 정리하면, 복지를 후퇴시켜 도시구조와 산업기반에 중심적으로 투자했다든가, 주택정책과 환경행정에는 열의가 없었다든가, 소프트를 경시하고 상자곽만 만들었다. 또는 중앙정부의 뜻을 받들어 세계도시 만들기에 매진했다 등으로 요약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지적되는 것은, 그가 건물은 남겼으나 전임자에 비해 선도적으로 만들어 놓은 도시정책이 없었다는 것이다. 도쿄도가 갖는 전국적인 영향력으로 미루어 볼 때 시대의 변화에 적극 대응하는 도시정책을 추진하여야 했으나, 기껏해야 텔리포트 타운 건설과 같이 다른 지자체를 뒤쫓거나 중앙정부의 정책에 호응하는 정도였으니, 그는 주어진 자치의 틀 안에서 훌륭한 관리자였지, 지방정부의 자주권을 확대하고 이끌어 나가는 창조적 지도자는 아니었던 것이다.
6.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도시정책도 생활의 원천이 되는 지자체의 경제력 유지와 과실의 공평한 배분이라는 목적을 갖고 있다. 도쿄도는 좌·우 정치세력의 집권변화에 따라 내수확대를 위한 도시개발이나 도시경쟁력 증진을 위해 업무활동공간 정비를 중시하기도 하고, 공동체 유지를 위하여 배분과 생활기반정비를 중시하기도 하였다. 복지정책의 재정을 확보하기 위하여 중앙정부를 상대로 재정자주권 투쟁을 하기도 하였고, 역으로 지출감소라는 감량경영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생활환경의 질 향상과 복지서비스에 대한 과도한 지출은 경제기반이 취약해질 경우 흔들리고 만다는 것을 우리는 도쿄도의 정책결과에서 읽을 수 있다. 반면에 도시경제력을 증진시키기 위한경제 기반에 대한 집중투자도, 도시경제가 지역·국가 및 세계경제와 연결되어 있고 오히려 이 영역에서의 영향을 더 크므로 개별도시에서의 시도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점도 읽을 수 있다. 스즈키 도지사가 국제화, 정보화에 의한 세계도시 도쿄를 뒷받침하기 위해, 그리고 변화하는 산업구조개편에 호응하기 위해 정력적으로 투자하였어도 커다란 흐름인 경기변동을 읽지 못해 그의 노력은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지자체가 자주적으로 안정된 도시경제를 유지시키며 거기서 나오는 재정으로 생활의 질을 향상시키고 복지를 실현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도시경제의 육성은 지역 또는 국가, 세계 단위에서의 동향분석과 공동대처에 의해서만 효과가 있다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이런 도시경제 육성을 위한 투자와 삶의 질 향상 및 복지서비스 배분의 균형점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은 국가와 마찬가지로 지자체도 풀기 어려운 과제인 것이다. 그러나 그 해결점을 찾는 것은 국가나 도시정부의 변하지 않는 목표이기도 하다. 지방화에 따라 점차 자주화되는 도시정부의 권한하에서 도시기업과 상공회의소, 시민단체, 개별시민, 교육계 등 각 참여자들이 정책의 균형점을 찾아야 하고, 그리고 중앙정부와의 긴밀한 협조로 대응해 나가야 하는 것은 앞으로도 마찬가지이다.

도쿄, 동경
 

※ 관련자료

국가 및 위상일본의 수도
RegionKanto
IslandHonshu
Are2,187.08㎢
- % water1.0%
Population(June 1, 2006)
- Population12,678,395(23개 특별구 지역은 8,520,000인)
- Density5796/㎢
Website : www.metro.tokyo.jp/
1.지역개관
동경도는 일본열도의 거의 중앙이자 관동지방의 남부에 위치하고 있음. 동경권 또는 동경대도시권은 동경과 인접하고 있는 사이타마, 카나가와, 치바현으로 구성되어있으며, 일본 인구의 26%를 차지하고 있음

수도권은 동경도와 주변 사이타마, 카나가와, 치바, 군마, 토치지, 이바라키와 야마나시와 등 7개의 현으로 구성 동경도는 특별구 및 자치단체를 포괄하고 있음. 동경도의 중앙지역은 23개 특별구로 나뉘어져 있고, 서쪽 타마지역은 26시(市)와 3정(町) 그리고 1촌(村)으로 구성되어 있음. 이외에 태평양상에 위치한 이즈제도와 오가사와라제도의 2개 도서(총 2정 7촌) 또한 동경도 행정구역에 포함됨 도쿄의 인구는 약1,254만명(2005년 9월 1일 현재)이고, 면적은 2,187㎢임
2.지역별 현황
도쿄, 동경, 동경도청
1) 특별구 지역
특별구지역이 차지하는 전체면적은 621㎢임. 인구는 증가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845만명(2005년 9월 1일 현재)이고 인구밀도는 1㎢당 13,603인임.

23개 특별구 지역에는 상업과 기업시설이 집중하여 있음. 사무실과 업무시설이 증가함에 따라 거주기능이 쇠퇴하고 있으며, 높은 지가와 녹지의 부족으로 인해 쾌적한 거주환경의 확보 역시 점차 어려워지고 있으며, 목조주택 밀집지역 등이 소재하고 있어 지진시의 피해우려가 크다는 점 및 도로 등 도시기반시설의 정비 지연 등의 문제를 안고 있음 .
2) 타마지역
동경도 구 지역의 서측은 市·町·村으로 구성되어 있음. 이들 지역은 구 지역의 베드타운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이중 몇몇은 지역의 상업 및 산업기지로 기능을 수행하고 있음. 이들 지역은 총칭하여 서부 동경 또는 타마 지역으로 칭하여 지고 있음.

타마지역의 면적은 약1,160 ㎢이며, 지역내의 인구는 406만명(2005년 9월 1일 현재), 인구밀도는 1㎢당 3,501인에 달함. 타마지역은 대학과 첨단기술산업, 연구기관이 집중하여 있어 높은 발전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 그러나 도로와 철도 등 도시기반시설의 정비가 지연되고, 개발에 따른 자연환경 훼손 등이 문제로 제기되고 있음.
3) 도서지역
도서지역의 면적은 약 406㎢이며, 특별구 지역이나 타마 지역과 달리 인구감소 경향이 계속되고 있음. 인구는 2만 6천명(2005년 9월 1일 현재)이a, 인구밀도는 1㎢당 65명 수준임.

도서지역은 자연환경이 양호하고 해양자원이 풍부하나, 개개 도시의 규모가 작고, 지리적으로 격리되어 있어 경제적인 측면에서나 주민생활의 측면에서 취약한 상황에 있음.

3. 동경의 인구
2005년 10월 1일 현재 동경도의 추계인구는 1,254.4만명으로 전국 총인구의 약 10%를 차지하고 있으며, 인구밀도는 1㎢당 5,736명으로 전국 제1위임. 지역별 인구는 23개 특별구가 845.7만명, 타마지역이 406.1만명, 도서지역이 2.6만명임. 세대수는 586.6만 세대로 1세대당 가족수는 2.14명임.

2004년의 다른 현지역과 동경의 인구동태를 보면, 전입이 43.3만명, 전출이 36.2만명으로 7.2만명이 증가하였으며 1985년을 제외하고 1967년 이후 인구가 감소하였으나, 1997년에는 12년만에 인구가 증가하어 2004년도 다시 인구가 증가하고 있음.

2005년 1월 1일 현재의 주민기본대장에 의한 동경의 거주민은 1,216.1만명임. 이를 연령별로 보면, 연소인구(0∼14세)가 144.6만명, 생산연령인구(15세∼64세)가 853.9만명, 노인인구(65세이상)가 217.7만명으로 구성비율은 각각 11.9%, 70.2%, 17.9%임 전체 인구중 노령인구 비율은 1978년 UN이 고령자가 많은 국가의 기준으로 정한 7%를 넘어선 이후 급속히 증가하여 1998년에는 「고령사회」의 기준인 14%를 초과하였으며, 현재는 약 18%에 달하고 있음

2000년도 국세조사에 의하면 2000년 10월 1일 현재 15세 이상의 인구는 1,059.6만명이며, 그중 노동력 인구는 647만명, 취업자는 615.8만명, 완전 실업자는 31.2만명인 것으로 나타남. 취업자를 산업부문별로 보면, 제1차산업은 2.7만명(0.4%)이고, 제2차산업(광업· 건설업 및 제조업)은 138.3만명(22.5%), 제3차산업(상업·운수업·통신업·서비스업 등)은 457.3만명(74.2%)임. 직업별로는 농림업·어업에 관계된 직업종사자는 2.8만명(0.5%), 생산·운수에 관계된 직업종사자는 148.1만명(24.0%), 판매·서비스에 관계된 직업종사자는 179.8만명(29.2%)이며, 사무·기술·관리에 관계된 직업종사자등 285.1만명(46.3%)인 것으로 밝혀짐
4. 동경의 지역경제
도쿄, 동경 동경은 세계적인 금융중심지로, 세계의 대규모 투자은행과 보험사의 본사가 자리잡고 있으며, 일본의 교통, 출판 및 방송관련 산업의 중심지 기능 역시 수행하고 있음.

세계 제2차 대전 이후 중앙집권적 경제성장기 동안 많은 기업들이 중앙정부와의 접근성 등을 고려하여 오사카 등의 도시에서 동경으로 그 본사를 이전하였으며, 이는 결국 동경 일극집중현상을 심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동경의 생활비용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증가시키는 역할을 하였음.

2003년 현재 동경도 전체 산업의 종사자 수는 상주지역 기준으로는 530만인, 취업지역 기준으로는 756만인에 달하고 있음. 이를 1990년과 비교해보면 지난 13년간 종사자 수가 15만 정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음. 산업별로는 도소매업과 서비스업 종사자 수가 가장 많으며, 제조업 종사자의 수는 약 107만인(취업지 기준), 운수통신업이 55만인에 달하고 있음.

동경도의 산업별 고용자수(1,000인)
산업구분상주지기준취업지기준
1990200319902003
농림수산업9.98.813.69.4
광 업2.51.84.02.7
건설업445.6342.9612.8479.2
제조업1,145.7752.91,601.41,074.2
도소매업1,394.31,359.61,936.11,891.7
금융보험업279.9216.1482.5373.3
부동산업125.1124.3170.7170.7
운수통신업353.4363.1562.2551.4
전기가스수도업24.323.439.636.8
서비스업1,501.41,943.62,065.32,723.6
공 무176.4167.1263.6251.1
총 계5,458.45,303.67,751.97,563.9

2003년 현재동경의 지역내 총생산은 약 84조엔임. 도시총생산의 구성을 살펴보면 산업부문이 85조엔이며, 그 대부분은 서비스업의 생산임. 이에 비해 제조업은 약 9조엔으로 전체 도시총생산의 11% 수준인 것으로 나타남

동경도의 도시총생산 현황(2003년도)
 2003(백만엔)산출액도시총생산도시순생산
1.산 업154,095,10985,309,84969,257,570
농림수산업85,24146,52832,745
광 업49,38632,95328,978
제조업20,848,6968,987,1558,389,547
건설업8,693,6734,733,5004,258,189
전기,가스,수도업2,277,3801,341,144882,239
도소매업27,360,87316,509,35515,380,897
금융보험업18,961,23011,850,69410,814,920
부동산업14,319,12311,068,7747,230,503
운수, 통신업10,379,3196,191,0315,157,596
서비스업51,120,18824,548,71517,081,956
2.정부서비스 생산자9,287,5335,233,5314,143,776
전기,가스,수도업861,161652,282128,736
서비스업1,311,4851,021,756976,378
공 무7,144,8873,559,4933,038,662
3.가계·민간·비영리서비스 생산자2,183,8771,628,7661,421,850
서비스업2,183,8771,628,7661,421,850
소 계161,566,51992,172,14674,823,196
수입관세등231,712231,712231.712
(공제)총자본형성관련소비세493,974493,974493,974
귀속이자0-8,279,627-8,279,627
합 계165,304,25783,630,25766,281,307

 
주
  1. (1) 1968년 연합체구성집회에서 강연한 영국의 런던대 교수인 롭슨이, 일본에서 시작되는 생활환경 중시정책이 영국의 내셔널 미니멈처럼 국가차원이 아니라 도시차원에서 출발하려 한 점에서 시빌 미니멈이 되지 않을까 한데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사회간접자본을 생산기반과 생활기반으로 나누고, 이를 우선순위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대립적으로 이론을 전개한 것은 미야모토 켄이치였다(宮本憲一, 社會資本論, 1969)
  2. (2) 1960년대 고도경제성장 시기에 저급사설탁아소에 맡겨진 조소득층 유아들이 영양실조사하는 사건이 급증하여 정치문제가 되었다. 이에 중앙정부에서는 일정한 시설수준에 달하는 탁아소에 보조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하였는데, 실제로 저소득층이 이용하는 소규모 사설탁아소는 제외되었다. 이에 미노베 도지사는 중앙정부의 지침을 무시하고 대상 외의 소규모 사설탁아소에도 지원하였다.
  3. (3) 1969년 일본 대장성에서 시기상조라고 하였지만 도가 독자적으로 실시하였다. 중앙정부에서는 1973년부터 뒤따라 실시하게 되었다.
  4. (4)1968년 도쿄전력과 아황산가스 배출기준 협정을 맺고 1969년부터 공해방지조례를 제정하여 중앙정부 기준의 미비점을 보완하였는데, 국회에서는 이듬해 공해관계 14개 법을 제정하였다.
  5. (5) 도쿄도는 노약자를 고려하여 육교나 지하도보다 횡단보도 위주로 설치하고 신호주기를 길게 하였다. 자동차에 대해 엄격하게 된 것은, 당시의 승용차 보급확대가 불러일으킬 교통혼잡과 공해라는 외부불경제에 대한 논쟁이 활발히 일어난 때문이기도 하다(宇澤弘文, 自動車と社會的費用, 1974 참조)
  6. (6) 4조엔 비전에는 건축가 단케 겐조의 제자 구로카와 기쇼가 관여한 것으로 기능적, 물적 개발계획이 강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 계획은 지자체 선거전에서 본격적인 정책대결의 막을 올린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7. (7) 여기서 제시한 과제로는 ①광역토지이용계획의 책정과 그 실시 ②공해에 대한 광역적 방위태세의 확립 ③정보, 교통, 유통시스템의 확립 ④오픈스페이스 시스템의 광역적 정비 ⑤수자원의 확보 ⑥도심지대 재개발에 의한 인구회복 정책의 추진 ⑦관청, 공장, 대학 등의 재배치 ⑧도현 구시정촌 각 레벨에서의 지자체 재원, 권한의 적정배분에 의한 높은 차원의 시빌 미니멈 실현 ⑨지자체의 광역협력에 의한 광역계획의 전개이었다.
  8. (8) 스즈키 도지사는 도채의 전액상환, 공영기업 연부금의 조기상환, 각종 기금의 설치, 가공기채의 설정과 상환, 세수예상액의 저평가 등으로 흑자를 감추고 복지지출 등에 대한 도민의 세출요구를 억제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금이 1989년에는 1조 2,000억엔 가량이 되었다.
  9. (9) 알려진 바와 같이 도청사는 스즈키 도지사와 절친한 건축가 단케 겐조가 수의계약으로 설계한 것이다. 건축비로는 약 1,500억엔이 들었다고 한다.
  10. (10) 스즈키 도지사는 퇴임후 현재 이 도쿄 국제포럼의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11. (11) 건설, 철강, 시멘트, 부동산, 전력, 상사, 은행, 증권 등 모든 기업이 참가해서 발족한 사단법인 일본 프로젝트 산업협의체의 약칭
  12. (12) 도쿄 텔리포트 타운은 현재 계획을 축소하고 계획기간 연장조치를 취하였다. 그러나 장기불황 때문에 투자분을 회수할 방법이 없고 빚을 뒤로 미루는 형태가 되었다. 현재 오픈되어 있는 시설로는 도쿄 국제전시장(빅 사이트), 도쿄 텔리포트, 도쿄 패션타운, 물의 과학관, 호텔, 공단주택과 유리카모메(신교통)가 있다.
 
참고문헌
  1. 本間義人(1996), 土木 家の思想-都市論の系譜, 日本評論社
  2. 이호철(1996), 일본의 지방자치-어제와 오늘, 삼성경제연구소
  3. 土岐(1995), 東京問題の政治, 日本評論社
  4. 宮本憲一(1995), 地方自治の史と展望, 現代自治選書
  5. 石田房(1992), 未完の東京計, 筑摩書房
  6. 東京都(1991), 第3次東京都長期計-マイタウン東京21世紀をひらく
  7. 原剛(1989), 東京改造, 陽書房
  8. 加茂利男(1988), 都市の政治, 現代自治選書
  9. 高寄昇三(1985), 都市論(박연호, 이상화역(1994) 도시경영론, 선일문화사)
  10. 井出嘉憲(1972), 地方自治の政治, 東京大出版
  11. 松下圭一(1971), 都市政策を考える, 岩波新書
  12. 東京都(1971), 場と空の東京構想
by UrbanArch | 2009/04/20 01:09 | Press | 트랙백
도쿄 도시 재생관련 신문기사-2
원문링크 : http://srchdb1.chosun.com/pdf/i_service/read_body.jsp?ID=2007013000044


[도쿄가 되살아난다] [下]

 “투자도 개발도 도쿄에 집중” 국가전략 U턴
 
 
 

3월 도쿄 롯폰기에 문을 여는 도쿄 최대 복합시설 ‘미드타운’. 건설사인 미쓰이(三井)부동산은 2002년 ‘도시재생(都市再生)본부’에 “문화재 조사 때문에 사업이 너무 느리다”는 고충을 토로했다. 미드타운이 건설되는 땅이 에도(江戶)시대 영주(領主) 가문인 모리가(毛利家) 저택이 있는 곳이라 각종 조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불평 접수후 문화재 조사는 곧 끝났고, 미쓰이는 공사기간을 1년 단축했다. 공기(工期) 단축으로 미쓰이가 얻은 추가 이익은 임대료 등 300억엔(약 2400억원) 이상이다.



‘미드타운’이 토지 낙찰에서 준공까지 걸린 시간은 5년. 2003년 준공된 비슷한 규모의 ‘롯폰기힐스’는 무려 17년이 걸렸다. 왜 차이가 나는 것일까. 결정적인 원인은 ‘롯폰기힐스’는 일본 정부가 ‘국토 균형발전’을 지상 과제로 삼았던 1980년대에 사업이 시작됐고, ‘미드타운’은 도쿄 일극집중(一極集中) 시대에 건설됐다는 점이다.

미드타운 건설과정에서 수호천사 역할을 한 것은 2001년 일본 정부가 ‘도시 재생’을 정책의 우선 과제로 내세우면서 정부 내에 설치한 ‘도시재생본부’였다. 현재 본부장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다른 본부원들도 몽땅 장관들이 차지한다. 창설 당시 위원장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였다. 거품경제 붕괴 후 10년동안 잠자던 거대도시 도쿄를 살리려고 정부 각료 전체가 매달린 것이다.

이정표는 2002년. 일본 정부는 40여년 간 도쿄, 오사카 등 수도권의 성장을 가로막았던 ‘공업 등(等) 제한법’ ‘공업재배치촉진법’ 등 수도권 규제를 철폐했다. 용적률(땅 면적에 대한 건물 연면적의 비율)을 대폭 완화해 도시 재개발을 장려하는 ‘도시재생특별조치법’도 시행했다. ‘미드타운’은 이 법에 따라 용적률을 2배 이상(320%?670%) 늘렸다.

물론 일본 정부가 ‘도시 재생’을 앞세워 공공 투자를 늘린 것은 아니다. 고이즈미 재임 중 공공 투자는 연간 12조엔(약 95조원)에서 7조엔(약 55조원)으로 오히려 줄였다. 하지만 규제를 풀자, 잠재해 있던 민간 투자가 밀려들었다. 2001년 출범한 부동산투자신탁(REIT·증권시장에서 자금을 모아 부동산에 투자하는 금융상품)의 누적 투자 규모는 25조엔(약 198조원). 부동산 사모(私募) 펀드의 규모는 6조엔(약 47조원)을 돌파했다. 이처럼 불어난 투자자금은 도쿄를 넘어 일본 전역의 지방 도시로 투자 지역을 확대하고 있다.

‘정책의 선(善)순환’이란 이런 것이다. 일본 정부는 2002년 수도권 규제에 이어, 2004년 노동 규제를 완화했다. 정책 변화는 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자극했다. 전국 실업률은 2002년 5.5%에서 4%로 하락했고, 도쿄 인구는 2000년 이후 65만명이 늘었다. 이것이 오피스 공급 물량을 소화해 내는 원천이다. 현재 도쿄 전체의 업무용 빌딩 공실률(空室率)은 2.8%. 자연 공실률로 여겨지는 3%보다 낮다. 서울의 공실률은 현재 3.12%.

지금 도쿄 도심의 관청가 가스미가세키에서 의미있는 건설 사업이 진행 중이다. 도시재생특별조치법에 따라 1차 개발 대상으로 선정된 이른바 ‘R7 프로젝트’다. ‘R’은 ‘도시 재생(Renaissance)’과 ‘민관(民官) 교류(Relation)’를 뜻한다. 오는 9월 한국 ‘스타타워’보다 규모가 큰 빌딩 2동이 관청가에 문을 여는 것으로 프로젝트는 끝난다. 일본 정부는 1980년대 말부터 ‘수도기능 이전 사업(관청과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사업)’을 추진해 왔다. 새 건물은 일본 정부가 수도 기능 이전을 사실상 중단했음을 상징한다.

1972년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당시 총리가 ‘일본열도 개조론’을 제창한 이래 불문율로 자리잡은 ‘국토의 균형발전’ 이념. 일본경제연구센터에 따르면, 1980~90년대 일본의 사회 자본은 도시보다 지방에 60~70% 더 많이 투자됐다. 이에 따라 지역간 경제적 격차 확대가 어느 정도 완화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퍼주기 분배 정책이 막대한 자원 낭비를 초래하면서 일본 사회의 경쟁력을 장기적으로 약화시켰다는 반성론이 2000년대 이후 강하게 제기됐다. 도쿄 일극집중 정책은 이런 반성론에서 출발했다.

(도쿄=선우정특파원 su@chosun.com)
by UrbanArch | 2009/04/20 00:38 | Press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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