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건축 3 : 해운대성당 (알빈 (Alwin Schmid) 신부)


 우리나라 최고의 해변과 온천 휴양지로 명성이 높던 해운대는 1990년대 신시가지가 개발되면서 부산의 신흥 주거지역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최근에는 ‘컨벤션, 영상, 해양레저특구’로 지정되면서, 국제화, 세계화를 선도하는 지역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해운대 해수욕장 배후 시가지 안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오래된 재래시장과 구불구불한 골목길 등 옛 마을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 마을의 흔적을 따라 걷다보면 제법 오래된 하얀 교회당을 발견할 수 있다. 


해운대에는 특급호텔들이 해변을 따라 늘어서 있으며, 성당 주변에도 초고층의 아파트들과 거대한 유리벽을 가진 복합쇼핑몰이 자리 잡고 있다. 또 성당으로 들어서는 길목에도 대형 온천센터가 최근 완공되었다(2005년에는 공사 중이었다).  해운대 성당은 그런 고층 건물들로 둘러싸인 채, 작은 건물처럼 왜소하게 보인다. 하지만 성당이 완성되던 1964년경만 하더라도 아마 이 인근에서 가장 큰 건물들 중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성당의 하얀 종탑은 멀리서도 눈에 띄는 랜드마크(landmark)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성당 바로 옆에 자리 잡은 해운대 초등학교를 다녔던 학생들은 아마 그 근처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해운대 성당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해운대성당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하고 아름다운 해변 마을의 하얀 교회당이라는 낭만적인 이미지만 가졌던 것은 아니다. 1964년에 준공된 해운대 성당은 오히려 그 당시 카톨릭 교회와 성당에 불었던 급격한 변화의 바람을 간직하고 있는 성당일지도 모른다. 해운대 성당이 지어지던 무렵인 1960년대는 세계적으로 카톨릭 교계가 큰 변화를 겪던 시기로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0-1965.12)는 카톨릭 교회의 현대화를 가져 온 중요한 계기였다. 특히 성당 내에서 치러지는 거룩한 의식에 평신자가, 국외자나 방관자가 아니라, 경건하고 능동적으로 참여하기를 촉구했다. 이런 흐름을 앞장서 받아들이려는 시도는 한국 카톨릭교회가 아니라 오히려 한 외국인 수도신부의 건축활동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가 바로 해운대 성당을 설계했던 알빈 신부이다.

해운대 성당뿐 아니라 초장동 성당, 청학동성당, 구포동성당, 온천동성당 등 부산의 많은 다른 성당을 설계했던 알빈(Alwin Schmid) 신부는 독일 남부 스와헨(Schwahen) 지방에서 1904년에 태어났다. 대학 때는 미술사와 조형미술을 공부한 신부는 대학을 졸업한 후 뷜쯔부르크 대학에서 신학을 연구하고 1936년 사제로 서품되었다. 하지만 언어에 재능이 없었던 알빈 신부는 사목활동보다, 성당의 설계와 벽화, 제대, 감실, 의자 등의 가구 및 공예품의 제작에 더 큰 재능을 발휘하였다. 50년대말 한국의 성당 설계에 관여한 신부는 1961년 우리나라에 들어와 본격적인 건축 및 미술활동을 펼치게 된다. 놀라운 것은 그가 한국에 온 후 1978년 왜관수도원에서 세상을 뜨기까지 17년간 성당 79개, 공소 30개, 부속성당 14개, 기타 학교 및 병원 등 모두 184개를 설계하는 엄청난 작업을 했다는 점이다. 성당 79개는 같은 기간 우리나라에 지어진 성당의 30%에 해당하는 양이었다.


이처럼 해운대성당은 독일 출생의 알빈신부와 세계 카톨릭계의 변화라는 배경을 담고 설계되었다. 해운대 성당의 내부를 위에서 내려다보면 평면의 깊이가 폭보다 더 작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즉, 신도석이 제단 부근을 넓게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고딕 성당을 비롯해 많은 성당들이 입구를 들어서면 중앙통로를 따라 깊숙이 이어지는 긴 장방형 평면을 가지고 있는 것을 떠올리면 이런 배치는 매우 독특한 것임을 발견하게 된다. 이처럼 제단을 중심으로 방사상으로 신도석을 배열한 것은, 더 많은 신도들을 제단 가까이로 끌어들여 전례에 진정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려는 알빈 신부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해운대 성당의 평면에는 이런 기능적인 이유 외에도 상징적인 의미도 발견할 수 있다. 해운대 성당과 비슷한 시기에 알빈 신부가 설계한 상주 남성동 성당이나 의림동 성당과 비교하면, 그 평면이 십자형을 바탕에 두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그리스도의 몸’을 성당의 평면에 구현한 것이다. 외부에서 해운대 성당을 보면 건물의 형태가 울퉁불퉁해 보이는 이유가 바로 십자형의 평면을 3차원적 공간으로 치환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알빈 신부가 설계한 성당들은 대개 특별한 장식 없이 시멘트 모르타르 마감 위에 흰색의 페인트를 칠한 간소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종탑도 하늘을 찌를 듯 위압적이거나 뾰족하지 않다. 성당 벽과 종탑 위에 붙어 있는 십자가의 형태도 오늘날 많은 교회당의 그것들처럼 과시적으로 크거나 번쩍거리지 않는다. 오히려 짧고 뭉툭한 십자가의 팔은 요즘의 날씬한 십자가들에 비하면 조금 촌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 십자가는 퉁퉁한 어머니의 손처럼 푸근하다. 이처럼 알빈 신부의 성당들은 위압적인 높이나 규모, 화려한 장식은 없지만 주변 환경과 적절히 조화되고 친근하게 보이는 소박한 건물들이다.

봉헌된 지 40여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해운대 성당을 둘러싼 주변환경은 너무 많이 변했으며 지금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더 높고 더 큰 건물들로 점점 잠식되고 있는 해운대에서 한때 가장 높은 건물이었던 해운대 성당이 이제는 가장 작은 건물들 가운데 하나로 전락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건물로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by UrbanArch | 2008/01/27 02:11 | Architecture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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